작년에 의원면직(사직)을 한 후 꽤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전 동료가 된 교사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새 학기 소식을 보면 '강 건너 불구경이 따로 없구먼' 하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미소를 짓게 됩니다.
나는 준비된 상태로 사직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을 그만두고 난 뒤의 미래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했지만 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 채로 의원면직을 해 버렸습니다. 용기와 치기 사이, 무모와 대담 가운데 어딘가에 있었던 결정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열심히 고민만 했던 게 문제였습니다.
이전에 글 쓴 대로, 첫 3개월은 미친 듯이 수능 공부를 했습니다. 그땐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어떠한 분야로 진출한다는 것은, 괜찮은 대학에서 관심 있는 학과를 전공하고 관련 분야로 취직한다는 것,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음에도 대학에 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시간을 버렸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등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며 내가 논리와 알고리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소프트웨어공학 분야로 진출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나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얻었습니다. 내가 만약 실리를 따져 가면서 수능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수능 다음날부터 파이썬 기초 문법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코드를 독학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전공자도 개발을 배울 수 있는 콘텐츠는 세상에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나의 생각과 논리가 코드로 고스란히 기록에 남는 일은 짜릿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교사 일을 왜 좋아했는지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학교 현장은 학생에 관한 수많은 데이터의 정글입니다. 초등교사는 흘러 넘치는 학생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통찰하며 학급을 이끌고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학생을 이해하는 일을 잘해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나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른의 시각에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던 아이들의 행동들을 나는 늘 이해했습니다. 그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크고 작은 갈등해결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일과 다름없어요. 내가 할 일은 별게 없습니다. 귀를 기울이고 원인과 결과를 파악한 다음 교육자, 보호자, 어른으로서 나의 생각을 뽑아내 조언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반성하고 성장하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오히려 배우곤 했습니다.
교육과정과 학습목표, 성취기준을 분석하고 창의적으로 수업을 구성하여 이끌어가는 일도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담임에게는 학급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 주어지는 편입니다. 나는 내 입맛대로 학급을 이끌어 나가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의 수업 태도와 참여도를 능동적으로 관찰 평가하면서 수업을 개선하고 새로운 교수 학습 기법을 적용해 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의 수업은 학생들 사이의 대화로 넘쳐흘렀습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요즘 같은 삭막한 시대에 꼭 필요한 의사소통 역량을 조금은 배워갔을 것입니다.
비록 새로운 가치와 성장을 찾아 학교를 떠나게 되었으나 교사로 일하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말장난같이 들릴 수 있겠지만 내가 만약 학교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학교를 떠날 일도 없었겠지요. 나는 도전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한 스스로가 이제는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학교를 떠날 수 있도록 나에게 가르침을 준 학생들에게 고맙습니다.
제목에 진로를 결정했다고 썼지요. 나는 데이터 사이언스와 AI 엔지니어링 분야에 뜻을 품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렇듯 웹개발을 위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궁금한 분야를 파고 파고 파다 보니 여기까지 도착했습니다. 지금은 텐서플로우 코드와 함께 딥러닝을 공부하는 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것이 외계어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싶을 만큼 어렵고 막막했어요. 그런데 어려운 만큼 결국엔 이해하고 소화해 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합니다. 나는 이게 정말 재밌어요.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30대에는 여기에 내 모든 걸 쏟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열정이 있어요.
작년에 수능 준비를 하면서 수학 선택 과목으로 미적분을 열심히 공부했었거든요. 간당간당하게 1등급도 받았었고요. 그때 미적분을 공부해 둔 게 딥러닝을 공부하는 지금 도움이 되네요. 어떤 도전이든 나에게 손해 될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또 재밌는 건, 제가 이번에 사이버대학에 편입을 했어요. 작년에 수능까지 봐 놓고서 사이버대학에 들어가다니 웃기지요? 독학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전공자들은 학부에서 어떤 것들을 배우는지 궁금했거든요. 나중에 혹시 공대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과정을 밟을 수도 있으니까 공학 학사를 따 두면 도움도 될 것 같았고요. 하지만 오프라인 대학을 다니는 기회비용을 감당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사이버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을 했어요. 이번 학기에는 수업 4개를 듣는데, 수업 하나하나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알차서 정말 만족하고 있습니다.
특히 빅데이터 개론을 들으며 학문적 기반을 다지고,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다룰 때 정말 정말 중요한 통계학 수업을 들으며 부족했던 수학 지식을 보충할 수 있는 게 좋습니다. 실무에 필요한 코드 작성은 내 취향에 맞게 독학하고, 거기다 조금만 시간을 더 내어 집에서 간편히 대학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정말 편리하고 행복합니다. 내가 만약 네임밸류에 집착하며 오프라인 대학을 고집했다면 이렇게 시간을 알뜰히 활용할 수 없었을 거예요. 배움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이전에 말한 것처럼 해외 진출에 대한 열망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그런데 조금 바뀐 점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해외로 무조건 나가고 말겠다는 생각은 사라졌습니다. 일단 열심히 공부하고 배울 생각입니다. 좋은 기회가 온다면 국내 기업에서도 경력을 쌓고 싶어요. 그런 다음 나가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글로벌하게 일할 수 있는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좋겠지요. 글로벌 역량을 키우기 위해 모든 독학은 영어 콘텐츠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의 하나를 들어도 영어로 된 강의를 보고, 책 하나를 봐도 원서로 봅니다. 조금 더 기본기가 탄탄해지면 논문 리딩과 분석도 해보려고 합니다.
말은 뻔지르르하게 했지만, 사실 저는 그냥 공부하고 있는 백수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행복합니다. 언제든 취업은 하겠지요. 그게 올해가 되든 내년이 되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브런치에도, 앞으로 더 자주 글을 쓰겠습니다. 의원면직을 고민하는 많은 교사들, 또 직무전환을 고려하는 많은 직장인들에게 저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찾아올게요! 감사합니다.
[붙임]
11월 말부터 3월까지 4달 동안 공부한 것들을 순서대로 정리해 봅니다.
- 파이썬 기본 문법
- 파이썬 Flask 라이브러리
- HTML, CSS, Boostrap5
- Git, Github
- 자바스크립트
- MySQL
- 정보처리기사 필기(합격)
- 파이썬 Numpy, Pandas, Matplotlib, Seaborn 라이브러리
- Linux 커맨드라인
- R
- OPIC AL / TOEIC 970
- 프로그래머스/해커랭크 코딩테스트 문제해결 (현재진행 중, 아직 많이 부족해요)
- 고려사이버대학(편입) - 확률과 통계, 소프트웨어공학, 빅데이터개론, 파이썬 강의 수강 중
- 파이썬 Tensorflow와 함께 Neural Network 이론 학습 (현재진행 중, 많이 부족하지만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suriring/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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