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관둔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물었습니다. 학교 일이 그렇게 안 맞아요? 그러면 나는 답했습니다. 아뇨, 일은 정말 재밌었어요. 배운 것도 많고요. 더 이상 애들을 못 본다고 생각하면 마음도 아프고 많이 아쉽기도 해요. 그런데 여기서 평생 일할 생각은 없을 뿐이에요.
학교가 끔찍이 싫은 것도 애들과 학부모를 상대하는 일이 적성에 더럽게 안 맞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의식은 앞으로 학교에서의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학교에서라면 먼 미래는커녕 당장 5년 뒤의 가까운 미래에조차 원하는 게 없었거든요. 승진을 해서 관리자(교감, 교장)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연구해서 석박사를 따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장학사가 되거나 교육청으로 진출해서 공교육 체계 수립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우리나라 학교는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아닙니다. 교사가 시간과 노력을 아무리 투자해도 따라오는 보상이 고작 개인적 만족감쯤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에요. 신규 발령을 받고 1-2년만 일해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학교는 열심히 하면 손해를 보는 곳'이라는 사실을.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만약 나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가 인생의 큰 목표였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는 분명, 기혼자에게는 굉장히 메리트가 있는 직장입니다. 나는 확고한 비혼인은 아니긴 합니다만 가정을 일구는 걸 인생에 꼭 이뤄야 할 과업으로 여기진 않습니다.
30대를 눈앞에 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목표의식과 도전의식을 심어주고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인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나의 열정을 불태우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부끄럽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확실히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이, 심지어 꼭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확정하지도 못한 채로 의원면직을 저질렀어요. 누군가는 나를 멍청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후회는 안 돼요.
다음 편으로는 일을 그만둔 젊은 공립 초등교사의 장래 고민, 나의 적성과 새로운 커리어 방향을 뒤적이는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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